연세 상경·경영대학 동창회 홈페이지

로그인 및 통합검색

연경포럼

연경포럼 서브 메뉴

YONSANG PLAZA

YONSANG PLAZA
제목:연세졸업 50주년의 단상_문상희(신과대)교수님과 연세춘추기자시절을 회상하며… 유필우(63, 경영학과, 전 국회의원)
등록일:2018-09-07
조회수:140

연세졸업 50주년의 단상

-문상희(신과대)교수님과 연세춘추기자시절을 회상하며…

유필우(63, 경영학과, 전 국회의원)

 

 졸업 50주년 재상봉 행사 소식에 감회가 크다. 그 동안 바쁜 생활 속에서 세월을 의식하지 않고  그럭저럭 지내왔는데 막상 대학 졸업 50주년이 되었다니 세월의 흐름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대학 1학년 때인가 재상봉 행사에 참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25주년 동문들중에는 재무부 장관도 있고, 현역으로 활동하는 분들이 있었지만 졸업 50주년 동문들은 그야말로 노인으로 보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60년대와 지금은 평균 수명도 20세정도 늘어났고 사회여건도 변했지만 지금 대학생들의 눈에는 우리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다. 그러면서 연세대학교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나에게 어떤 존재이며 어떤 의미를 주었는지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문득,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하나는 당시 신과대학의 문상희 교수였다. 그 분은 1학년인가 2학년 때 기독교 개론 강좌를 교양과목으로 한 학기 가르치셨는데 평생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신 분이다.

  교수님은 인간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우주 질서 속에 존재하는 작은 우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큰 뜻이 있어 이루어진 것이며, 특히 결혼은 하늘의 큰 뜻에 의해 맺어진 소우주(小宇宙)와 소우주의 결합이며 엄숙한 운명적 만남이라고 말씀하신 기억이 새롭다. 아마도 인간의 존엄성과 만남의 소중함 그리고 결혼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길가에서 옷깃만 스쳐도 전생의 인연이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과 같은 뜻의 말씀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삶은 만남의 연속이요, 그 만남이 소중한 인연이 되도록 노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마음으로 도와주고, 배려하며 살아가고자 다짐하곤 한다.

 문교수님은 강의 시간에 본인이 미국의 시카고 대학에서 공부했던 경험을 가끔 말씀하신 기억이 난다. 미국의 대학생들이 얼마나 많은 책을 읽는지,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 그리고 밤새도록 불이 꺼지지 않는 도서관을 보며 미국의 힘을 실감하였다고도 하셨다. 그러면서 학생들에게 여러가지 책을 추천해주고 꼭 읽도록 권유하셨다. 세계의 젊은이들과 대결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큰 뜻을 세우도록 가슴에 불씨를 심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추천해주신 책 중에서 K.Löwith의 “역사의 의미(Meaning in History)”와 R.G Collingwood의 “역사의 아이디어(The Idea of History)”를 원서로 읽느라고 밤새도록 영어사전을 찾던 기억이 새롭다. 이 두 책은 지금도 내 서가에 50년 가까이 꽂혀있다.

문 교수님이 학교 캠퍼스에서 담배 피우는 학생들을 쫓아가 나무라던 일은 많은 동문들이 기억하고 있는 에피소드이다. 기독교 대학교 캠퍼스에서 학생들의 담배를 피우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하셨던 교수님의 모습이 생생하다. 요즘도 가끔 연세 캠퍼스를 찾곤 하는데, 캠퍼스에 옹기종기 모여 남녀학생들이 담배 피우는 모습을 어쩌다 볼 때면 50년전 문상희 교수님 생각이 떠올라 엷은 웃음을 띄운다. 문상희 교수님의 생각과 뜻, 열정이 연세캠퍼스 곳곳에 다시 피어나서 연세정신의 원동력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연세춘추의 기자생활 역시 잊을 수가 없다. 연세대학교 2학년 때 연세춘추는 1-2학년 재학생을 대상으로 학생기자 4명을 뽑았는데 필기시험과 면접을 거쳐 합격되는 영광을 안았다. 연세춘추 기자생활을 오래한 것도 아니고 또 유능한 기자도 되지 못했지만, 나는 연세춘추 기자생활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생각의 수평을 넓혀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믿고 있다. 연세대학교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고 취재하면서 경영학과 학생만이 아닌 연세대학 전체를 들여다 보는 진정한 연세인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기자들은 토요일이면 서대문에 있던 동아출판사 조판실에 모여 밤늦게 까지 조판을 돕고 함께 자장면을 먹곤 했다. 인쇄 조판은 납으로 만든 활자를 하나하나 뽑아 짜 맞추는 것이었는데 자장면은 반드시 먹어야 하는 메뉴였다. 납을 만지는 사람은 자장면을 먹어야 납독을 해독시킨다 하였기 때문이다. 편집 조판이 끝나면, 어쩌다 막걸리를 먹으며 모두 둘러앉아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선율에 맞춰 서로의 별명을 지어 교향곡에 맞춰 노래를 부르곤 하였다. 그 때 신문사 주간이었던 최기준 선생님은 별명이 “놀란 토끼”였던가……. 그는 얼마 전 까지 성공회대학교 이사장을 역임하셨다.

 연세춘추시절 함께 일했던 선후배 기자들의 기억이 새롭다. 다 훌륭하였지만, 남다른 능력을 보여주었던 정구종 교수는 학교 졸업 후 동아일보 편집국장, 동아닷컴 사장을 역임하고 지금도 자주 만나는 63재상봉 동문이다. 요즘은 한일관계 연구에 몰두하여 관련 서적을 계속 출간하는 등 연구에 몰입하는 모습이 믿음직스럽다.

 연세 춘추생활을 핑계로 학교강의도 제대로 참석하지 못하면서 경영학 관련 전공 서적은 4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당연히 학교 성적도 좋지 못하였다. 그러나 연세 춘추기자였던 나는 비로소 눈을 똑바로 뜨고 세상을 보면서 내 평생 목표는 무엇이며, 내가 목숨을 걸고 변화시키고 발전시켜야 할 나의 무대는 어디인가 고민하고 생각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대부분의 연세대 경영학과 동기생들이 금융, 기업 분야에 진출하였지만, 나만 유독 행정, 정치, 사회 봉사 분야에서 평생 일하게 된 것도 연세 춘추와 문상희 교수의 가르침 때문은 아니었는가 자문해 본다.

 흔히 국적(國籍)은 바뀌어도 학적(學籍)은 영원하다고 한다. 한번 연세인은 영원한 연세인이라는 것이다. 생각컨데 삶의 긴 여정 속에서 학창시절은 젊은 날의 꿈과 이상을 가슴에 품고 순수한 마음으로 배우고 익히며, 고뇌했던 시절이어서 우리의 피와 뼈 속 깊숙히 DNA가 된 것은 아닌지 모른다.

 인간은 어느 곳에서 출발했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느 곳에서 끝마쳤는가가 더욱 중요하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연세 대학은 영원학 모교(母校)인 것이다. 마치 어머니 품 속 같이 말없이 안아주고 품어주는 고향 같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사회에 나와서 머리가 아프고 스트레스가 커지면 가끔 연세대 청송대를 찾곤 하였다. 졸업 후 미국에서도 2개 대학에서 공부한 적이 있는데 지금도 미국에 가면 다른 곳은 못 가도 그 대학에는 꼭 찾아 가려고 노력한다. 학교를 찾아 갔을 떄 느끼는 그 편안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이번 졸업 50주년 재상봉 행사는 마치 집 떠나갔던 아들, 따들이 지난 50년간 짊어졌던 무것운 짐들을 다 내려놓고 모교(母校)인 어머니 품에 찾아오는 행사라고 생각하고 그 의미를 둔다면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까?

오 그리운 배움의 집 연세, 연세, 그 품안에 안아다오 연세 연세…….

 

유필우 동문님은...

1967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후, 1974 제 15회 행정고등고시를 합격.

1988년부터 1992년까지 대통령비서실 민정비서실 행정관, 국장을 지내셨으며,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보건복지위원, 건설교통위원)직을 맡으셨습니다.

지금 현재는 인천사랑운동시민협의회 회장직을 맡고 계시며,

녹조근정훈정, 국무총리 표창, 상공부장관 표창 등을 수상하신 이력이 있습니다.

 

 

 

 

연락처 및 저작권

페이지 로딩 이미지 표시

페이지 로딩중 ...

페이지 로딩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