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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SANG PLA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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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김동준(83경제)의 사진 한 점, 생각 한 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는 무슨 일이, 인연과 인연
등록일:2017-01-20
조회수:1,310

사진 한 점 생각 한 줌

(김동준, 83경제, 큐캐피탈파트너스㈜ 대표이사 부회장)

2017년 연경포럼에 새롭게 선보일 사진에세이 코너는 지난 연말 출간된 김동준 동문의 사진 한 점, 생각 한 줌의 매, 난, 국, 죽 이 네 개의 구성 중, 김동준의 어린 시절, 성장 과정, 고난을 겪어낸 과정 등을 담아낸 매화 편에 담긴 사진으로 이야기를 열어본다.

 

손 안의 카메라가 전하는 깨달음의 미학 

사진은 시간과 공간의 전략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집니다. 무수하게 흩어진 시간과 공간의 단면을 베어내 짝을 찾아 주는 것이지요. 늘 내 손에 있는 카메라는 시공을 확장해 주는 마법의 도구가 됩니다. 시간과 공간, 그 짝짓기의 전략은 값비싸고 좋은 카메라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름답고 화려함이 잣대가 될 수도 없습니다. 사진가가 어떻게 세상과 소통하고, 마음을 담을 것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중략)

김동준에게 사진은 구도(求道)의 도구입니다. 이번에는 휴대폰 카메라를 들고 나섰습니다. 삶의 ‘모든 순간’을 함께 하기에 이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일기를 쓰듯이 세상과 교감합니다. 어떤 대상에 눈길이 머물면 시간의 끈을 따라 거슬러 올라갑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만나고, 어린시절로 돌아가고, 인생의 힘든 시기를 떠올립니다. 사진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생활의 발견에 느낌표를 찍는 일입니다. 현실에 있는 한 장면을 기록하지만 포토아이(photo-eye)를 통해 이를 미학적 창조로 승화시킵니다. 피사체와의 교감을 통해 자기성찰의 단면을 드러냅니다. 좋은 사진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식을 반영합니다.

그러나 정서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집단적인 세계관을 모색하는 데 기여합니다. 김동준의 사진이 그렇습니다. 그는 사진을 찍는 순간순간 깨달음의 느낌표를 찍습니다. (중략)

사진은 그에게 철학과 사색의 도구이기도 합니다. 9·11의 충격적인 영상을 보다가 선릉의 솔숲으로 향합니다. 안개 낀 소나무 숲길을 걸으며 마음을 다스립니다. 나무를 보고 돌아가신 어머니 이야기를 하며 눈물 짓습니다. 길 고양이 사진을 찍다가 생뚱맞게 회사 이야기를 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말을 걸고,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습니다. “예술은 보이지 않는 존재를 현시한다.”라고 한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예술론이 생각납니다.

그는 사진과 글을 통해 한 인간으로서, 또 경영자로서 세상과 교감하고 느낀 바를 진솔하게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를 사군자인 ‘매난국죽’으로 분류했습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계기로 삼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사진 한 점, 생각 한 줌》에는 세상과 소통하는 사진가 김동준의 겸손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중략) 김동준은 손 안의 카메라로 세계와 소통하며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정신을 일깨워 줍니다. 한껏 무르익은 지천명의 경지를 보여 줍니다. (주기중 시사매거진 포토디렉터의 추천사 중)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는 무슨 일이

사람은 살다 보면 여러 번 부침을 겪게 됩니다.

사업으로 성공하신 어떤 선배님은 제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생각으로,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라고 말씀을 드리자 “최선의 노력을 다해 열심히 산다는 것보다는 ‘잘’ 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조언을 주셔서 꽤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30대 초·중반까지 제 삶은 많은 실수와 시행착오들도 가득했기 때문에 맞이하는 모든 상황에서 ‘잘’ 즉, 결과를 좋게 처리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직도 젊은이들은 경험과 지혜의 부족으로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어 가면서 성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현실의 삶에 더 부합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 시절부터 경영·경제 복수전공을 하고 동시에 공인회계사 시험준비를 하면서 열심히 살았고, 대학원 진학 후 교수님 연구실 조교업무를 하면서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였습니다. 또, 석사학위를 공부하면서 한국회계학회 조교 업무도 맡아 수행하였었고, 석사장교로 군 복무를 마친 후에는 국내 최대 회계법인에서 근무했습니다. 회계사로 근무하는 중에 주경야독으로 모교의 경영학 박사과정을 마쳐 1998년에는 경영학 박사학위도 취득하였습니다. 정말로 숨 쉴 틈 없이 열심히 살아온 거였지요. 문제의 발단은 박사학위 논문 작성 이후에 선배 회계사 한 분이 회계법인 설립에 함께 하자는 제안을 해주신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지방대학의 교수로서의 삶보다는 이미 겪어본 회계사로서의 미래가 더 손에 잡히는 것 같아, 그 제안을 받아들였지요. 그러나 신설되는 회계법인의 실질적 리더로서 회계법인 기준자본금 10억 원 중에서 일부인 2억 원 정도의 자본금을 제가 납부해야 한다는 점이 큰 난관이었습니다. 마침 선배의 친구가 증권회사 직원이었는데, 돈을 단시간에 불려주겠다는 말에 회계법인 설립자금을 조달할 욕심에 여기저기서 무리하게 돈을 빌려서 1억5,000만 원 정도의 자금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IMF 금융위기가 터졌습니다. 투자한 회사는 부도가 났다고 하고, 신용미수를 사용하여 주식투자를 했기 때문에 제가 투자한 돈 이상으로 증권사에 빚을 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이 캄캄해지고,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 회계사 연봉 6,000~7,000만 원으로 생활비 쓰고, 부모님 봉양하고, 미래를 위해 약간의 저축을 하는 평범한 월급쟁이로만 살아왔던 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능력에 부치는 일을 괜히 시작했다는 후회가 밀려오고, 저는 낙담에 낙담을 거듭하였습니다. 게다가 강남에 약 100여 평의 사무실을 얻고, 회계법인 사무실을 준비하던 터에 자본금도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무실 인테리어 등의 대금으로 2억 원에 가까운 빚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한 번도 상상하거나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이었고, 앞날은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독한 금융위기 속에서 사무실 보증금과 임대료도 밀리고, 친구로부터 인테리어 대금 독촉까지 받는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지요.

너무나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IMF 위기 발발 이후 종금사 금리가 거의 40% 가까이 올라간 상황, 그 금리로도 돈을 빌리는 것은 거의 하늘의 별 따기였고, 회계사 경력밖에 없던 제가 무작정 시작한 컨설팅 회사 운영자금을 조달하는 것도 기대난망이었습니다. 저는 그냥 이게 악몽이었으면, 오늘 푹 자고 일어나면 내일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도 악몽 같은 현실이 그대로 저를 맞이하고 있었지요. 어느 날, 감옥같이 느껴지던 넓은 사무실에서 답답한 마음으로 온종일 시간을 보내다가, 퇴근해 집에 들어서서는 아파트 베란다에 나가서 하염없이 밖을 바라보았습니다. 한겨울 추위에 떨면서도 따듯한 안으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그저 여기서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가면 이 고통, 이 모든 것이 엄청나게 꼬인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떨어져, 떨어지면 아주 잠깐 아플 거고, 그 이후는 영원한 안식이야. 지금 겪고 있는 고통으로부터는 해방이야.”라는 악마의 속삭임이 바로 귓가에서 윙윙거렸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당시 그런 헛된 선택을 하지 않고 어떻게든 열심히 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던 것이 너무 아까워서 도까저히 죽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이후는 영화 ‘타이타닉’의 여주인공 ‘로즈’역의 케이트 윈슬렛(Kate Elizabeth Winslet)이 난파된 유람선 조각을 잡고 살아남아 구조된 이후 죽을 때까지 살았던 것 같은 삶을 저도 살았고, 살고 있습니다. ‘로즈’는 나중에 블루 다이아몬드를 바다에 던지며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승마, 경비행기 조정, 결혼 등’ 하고 싶은 일들을 모두 시도하면서 정말 멋진 생을 살지요.

그 이후 반년 만에 2억 달러 규모의 크로스보더 M&A의 성공으로 빚을 모두 청산하고도 컨설팅 회사를 계속 운영할 수 있게 되었고, 벤처캐피탈 대표, 코스닥 회사 대표, 전문대학교의 총장 등을 맡으면서, 지금은 1조가 넘는 자금을 운용하는 사모펀드 운영회사의 대표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 기간에 알래스카, 캐나다 로키 산맥, 하와이, 괌, 북해도, 스페인 코스타델솔 등을 여행했고, 많은 즐거운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여러 번의 위기를 만났지만, 첫 번째 위기보다는 쉬웠습니다. 위기를 어떻게 넘기면 된다는 지혜를 조금 터득한 덕분이겠지요. 

이제 다시 사진으로 돌아와서 너무 작아서 안 보이셨겠지만, 소나무로 덮인 큰 바위 중에 돌이 조금 드러난 곳에 까치 한 마리가 위태롭게 서 있습니다.요즘 스마트폰의 해상도가 워낙 뛰어나서, 이 사진을 찍고 확대해 보니 까치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여서 깜짝 놀랐었습니다. 물론 까치는 날개가 있어 저 바위를 박차고 나가도 훨훨 창공을 날겠지요. 그런데도 저 깎아지른 절벽 바위에 홀로 앉아 있는 까치의 모습에서 첫 번째 위기에 마음 둘 곳 없이 베란다에 서서 아래를 바라보던 제 모습이 투영되어 저는 한동안 까치로부터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실로 죽음은 한 순간이겠지요. 사고로 ‘죽음 가까이’ 갔었던 친구는 본인의 경험을 다룬 옴니버스형 연극에서 ‘죽음’이란, ‘다른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나만 없는 것’이라는 독백을 했었습니다. 그 독백을 들으면서 저는 많은 생각을 했었지요. 죽음 직전까지 가본 사람, 죽다가 살아난 사람들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바뀐다고 합니다. 그런 자세한 이야기들은 다른 책에 많이 있을 테니, 저는 간단히 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한마디만 남기고자 합니다.

“그때 죽었으면, 진짜 억울할 뻔했잖아.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인연과 인연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학 시절 둘도 없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비록 학과는 달랐지만 저는 공인회계사를 준비하고 친구는 재경행정고등고시를 준비하며, 고시반에서 함께 공부하던 인연으로 친하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정말 맑은 영혼의 소유자로 세상에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중에 그 친구는 고등고시에 합격한 후 법을 다루는 일을 맡아 전문적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한 후배는 대학원 시절, 제가 조교로 일하던 교수님 연구실 바로 옆 연구실의 학생이라는 인연으로 만나 친하게 된 후배입니다. 학부 시절 경제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을 경영학으로 변경한 것까지 같은 인연으로 덩치는 산만 하지만 순한 성격의 후배였습니다. 사회에 진출해 몇 년이 지나고, 친구가 결혼한다고 연락이 왔는데, 아 글쎄 후배의 여동생과 결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촌수가 조금 복잡해졌습니다. 친구의 약혼식에도 참석하고, 함이 들어갈 때도 함께 하는 등 후배의 부모님과도 얼굴을 뵙고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친구의 장인어른 그러니까 후배의 아버님께서 그 당시에 저를 좋게 보셨는지, 제가 첫 직장으로 일했던 대형 회계법인을 그만둔 후 소규모 합동회계사무소로 자리를 옮겼을 때 2개 회사의 회계감사 업무와 세무신고 업무를 맡겨 주셨었습니다. 나이 서른 초반의 회계사가 아무 집안 배경도 없이, 적지 않은 감사고객 회사를 갖게 되었던 것은 한참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생각해도 정말 멋진 일이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느낌이었지요. 그런데 수많은 우여곡절을 거쳐 20여 년의 세월이 지나, 제가 사모펀드를 운영하는 회사의 대표이사가 된 이후 첫 번째 바이아웃 투자(회사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투자)를 한 것도 친구의 처남인 후배의 소개가 인연이 되어 이루어졌습니다. 정말 돌이켜보면 엄청난 인연입니다. 파릇파릇한 대학 초년생 시절에 만난 친구와의 인연, 대학원 시절 만난 후배와의 인연으로 3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좋은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제가 이 친구나 후배와 30여 년을 교류하면서 절대 비즈니스의 득실을 따지거나, 제 이익을 추구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서로에 대한 좋은 인상으로 시작되고 서로의 삶을 지켜보면서 쌓인 신뢰로 이런 일들이 쉽게 이루어졌습니다.

회계사 업무를 그만둔 후부터 투자와 기업 인수·합병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비즈니스 및 투자의 성공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는데, 일명 ‘카운터 파티 리스크(counter party risk)’와‘우발 채무(contingent liability)’입니다. 용어가 익숙지 않은 분들을 위해 설명하면, 내가 지금 누구와 거래를 하는 것인가와 거래 이후에 내가 모르는 부실이나 소송 등이 있는가 입니다. 두 번째도 결국 첫 번째에 부속되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와 거래를 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업무를 진행하다 보면, 투자기회 및 인수대상 기업에 대하여 설명한 것과 그 이후 실제조사 및 실사를 하면서 파악되는 내용이 달라지면 중간에 과감하게 거래를 중단합니다. 그 이후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가늠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비즈니스에서 신뢰할 수 있는 상대방이 있다는 것은 성공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되는 것이고, 설사 후에 비즈니스가 결과가 좋지 않거나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상대방을 탓하지 않고, 나의 능력 부족이거나 운이 따르지 않았다고 위안으로 삼을 수 있게 됩니다.

다시 인연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 사진을 찍은 곳은 서래마을에 자주 들리는 맥주를 마시는 선술집인데, 깊은 인연이 있는 후배와 함께 간 곳입니다. 그곳에서 여러 가지 이국적인 느낌의 맥주 및 커피와 관련된 기계장치와 주인장의 멋진 오토바이도 눈에 뜨였지만, 제 눈을 가장 사로잡았던 것은 천장에 집게로 걸려 있는 수많은 쪽지와 명함, 사진들이었습니다. 

정신과 친구인 제 친구는 저렇게 무엇인가를 남기는 행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멀리 어느 곳을 갈 때는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진다. 다시 한 번 더 오고 싶은데, 과연 가능할까? 지금 기분 같아선 분명 다시 올 것 같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는걸 알기에, 확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오고 싶은 곳에 뭔가를 남겨 놓게 된다. 그 무언가가 이곳과 인연이 닿았으면 하고, 다시 나를 여기로 데려올 것이라는 바람을 안고 말이다. 그래서 저기 매달려 있는 명함, 돈, 메모지, 사진들이 그 염원을 담고 있는 것 같아 정겹다”라. 고요. 저는 법륜스님이 즉문즉설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제 살 만큼 산 50대 초반입니다. 프랑스 철학자인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불안》이라는 책에서 불안의 근본적인 원인은‘욕 심’이라고 설명합니다. 저도 마음 가득한 욕심을 버 리고, 앞으로 비즈니스를 하면서도 소중한 인연을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기를 염원하면서 저곳에 제 자취를 하나 남겼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친구와 후배와 저곳에 앉아 생맥주 한 잔 기울이면서 기쁜 마음으로 교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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