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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SANG PLA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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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조주청(63상학)의 죽기전에 꼭 가봐야 할 골프여행 - 파나마 엘 파나마 골프 클럽
등록일:2015-12-11
조회수:2,680

조주청의 안 가보면 후회할 골프 여행

파나마 엘 파나마 골프 클럽

 

글 + 사진 | 조주청(63상학, 여행작가·세계 130개국 여행)

 

“진정한 우리나라의 독립은 바로 파나마 운하의 관할권이 우리에게 돌아온 2000년 1월 1일이 되는 겁니다.”

파나마 국민들에게 새로운 천년, 밀레니엄 세레모니는 너무나 감격스러운 것이다.

새로운 새 천년의 장엄한 문이 열리면서 파나마운하는 드디어 파나마 국민들의 것으로 돌아왔다.

파나마 운하 관리권 정식 이양은 2000년 1월1일 0시지만 밀레니엄 맞이 행사를 피해 반환식은 앞당겨졌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 볼리비아,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온두라스, 에쿠아르도등 남미 6개국의 정상들은 이 날 파나마 운하 공식반환식에 참석해 파나마를 축하해 주었다.

하지만 정작 나타나야할 미국의 클린턴은 불참이었다.

파나마 운하를 오가던 배들이 줄을 이어 떨구어 내던 어마어마한 통행료를 호주머니에 속속 챙겨넣다가 이제는 남의 떡 보듯 해야하는 클린턴으로서는 굳이 보수파의 압력을 핑계대지 않더라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우리는 마침내 승리했다.”

모르코스 대통령은 서명식을 마친 후 자신있게 선언했다.

파나마 운하는 85년만에야 주인에게 되돌아온 것이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항로!

이것은 대항해 시대를 연 콜럼부스부터 수많은 항해자들의 염원이었다.

남미대륙의 끝과 남극대륙이 마주보는 드레이크해협이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빠져나가는 유일한 길이었다.

빠른 해류와 수많은 암초, 그리고 남극에서 몰아쳐 오는 폭풍으로 드레이크해협을 빠져나간다는 것은 지옥에서 다시 나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1520년. 마젤란의 선단이 드레이크해협 못 가 남미 대륙의 뾰족한 끝에 수로처럼 뱃길이 뚫려 있다는 걸 알았다.

마젤란해협의 발견은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유럽의 수많은 범선들은 동양의 금과 향료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 마젤란해협을 지나 태평양으로 내달았다.

산업혁명 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대륙간 무역항은 신속한 운송과 운송경비의 절약이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다.

대서양 끝까지 내려갔다가 마젤란해협을 건너 태평양 맨 밑바닥에서 올라와야 하는 뱃길은 너무나 돌아가는 우회 뱃길이다.

19세기 중엽, 인간들은 북미대륙과 남미대륙을 잇는 가느다란 중미의 한 지점을 뚫어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대 역사 운하를 계획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인 1889년, 니카라과에서 운하건설이 착공되었다.

그러나 자금압박과 정정 불안으로 니카라과 운하 건설은 중도포기하고 말았다.

파나마에서 운하건설이 시작된 것은 이보다 9년전인 1880년 프랑스인 레셉스에 의해서였다.

수에즈운하를 건설했다는 이 기고만장한 프랑스인은 7년만에 운하를 완공하겠다고 큰 소리 치고 이듬해 양대양 주식회사를 설립,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곳 지형은 수에즈와 달랐다.

수에즈운하는 수평식으로 땅을 파서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 시켰지만 이 곳 파나마는 가로막은 땅이 너무 높고 지질은 암반투성이라 공사는 난관에 봉착했다.

운하를 계단으로 만들어 배가 산 위로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갑문식 운하로 설계변경을 했으나 자금부족에 황열병과 말라리아가 만연, 수많은 건설공사 노무자들이 죽어가자 9년만에 공사를 중단하고 말았다.

멕시코로부터 방대한 땅을 빼앗은 미국이 운하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903년 프랑스로부터 운하굴착권과 기계설로비 일체를 사들였다.

그때까지 파나마는 나라가 아니라 콜롬비아의 한 주였다.

미국이 운하건설을 하고 그 이후 운하를 단독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그 지역의 치외법권을 콜롬비아 정부로부터 사들이려던 계획은 콜롬비아 상원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미국은 미약했던 파나마 민족주의자들을 선동하여 콜롬비아로부터 분리독립투쟁을 하도록 사주했다.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콜롬비아가 손을 들고 파나마는 독립했다.

미국의 파나마 운하 건설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말라리아와 황열병을 막는 대대적 방제사업에 증기삽, 준설선이라는 새로운 건설장비가 등장하고 유럽에서 1만 2천명 서인도 제도에서 3만 1천명의 노동력을 투입, 지상최대의 대역사 끝에 1914년 8월 15일, 마침내 운하가 완공되어 8만 1천 237톤의 퀸 엘리자베스호가 최초로 이 운하를 통과했다.

이 운하를 통과하는데는 배 한척이 평균 3만달러(3천 6백만원)를 지불한다.

“바다의 월광곡” 호는 165,235달러 58센트를 지불하여 파나마 운하를 가장 비싼 통행료를 지불한 배로 기록을 세웠고 1926년 리챠드 헬리버튼이라는 사람은 수영으로 64km의 파나마 운하를 건넌후 그의 몸을 배수량으로 환산하여 36센트의 운하통행료를 지불, 최소로 기록되었다.

파나마 운하는 분명히 파나마 땅을 뚫고 두 대양을 연경하지만 모든 관할 운영권은 미국이 쥐고 있었다.

새로운 밀레니엄과 함께 드디어 파나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파나마엔 멋진 골프코스가 3개 있다.

그 중에서 EL PANAMA G.C가 가장 좋다.

이곳은 철저한 회원체제로 비지터가 라운딩하려면 회원 동반은 필수적이다.

또 하나는 해변에 있는 퍼블릭 골프코스고 나머지 하나는 미군 골프장이다.

파나마시에서 파나마 운하쪽, 미군기지 안에 있는 가장 가까운 골프코스다.

이곳은 일반에게 완전히 공개되어 누구나 싼값에 라운딩을 할 수 있다.

코스관리도 아주 잘 되어 있고 Up Down도 적당해 우리 나라 골프코스를 연상시킨다.

혼자서도 라운딩을 할 수 있고 혼자하기 지루하면 프로 샵에 부탁해 다른 골퍼와 조인해서 라운딩 할 수도 있다.

그린피 4만원을 내면 18홀도 좋고 36홀도 좋다.

하루종일 칠 수 있다.

 

* 무상으로 기사를 게재하도록 허락해주신 조주청 동문님께 감사드립니다.

연락처 및 저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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